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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7조 자산가를 빚쟁이로 만든 일본 경제의 대 붕괴ㅣ260720 욕망이 낳고 두려움이 키운 일본 버블경제의 기록 [KBS 스페셜] KBS 2007.02.04 1. 1980년대 도쿄 긴자는 사치와 허영이 뒤섞여 흥청이던 거리였음.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은 호스티스들이 기업인 접대를 도맡았고, 어디서나 돈이 넘쳐나던 시절이었음. 그 거품의 중심엔 언제나 부동산이 있었음. 2. 다큐는 세 인물의 궤적을 축으로 삼음. 부동산 큰손 고지마 노부타카, 국민 엔카 가수 센 마사오, 울트라맨·고질라를 만든 미술감독 스즈키였음. 이들은 모두 같은 시기에 부를 이뤘고, 공교롭게도 파산한 해도 1991년으로 똑같았음. 3. 고지마는 직원 50명을 거느린 대형 부동산 회사를 경영하던 업계 큰손이었음. 긴자의 고급 술집을 비즈니스 무대로 삼아 은행 대출 관계자들을 상대로 부동산 자금을 조달했음. 4. 그의 무기는 현금과 배포였음. 긴자에서 수백만 엔을 우습게 쓰는 씀씀이에 취한 은행들이 너도나도 돈을 빌려주겠다고 나섰고, 그 지원을 등에 업고 매력적인 물건을 확보하는 수완을 발휘했음. 5.!전성기의 고지마는 도쿄의 빌딩을 여러 채 소유하며 전매로 막대한 차익을 남겼음. 연 매출 수백억 엔, 순이익만 1,500억 엔이 넘었고, 그가 매출을 늘릴수록 도쿄 땅값도 계속 치솟았음. 그는 호랑이가 돈을 지켜준다 믿고 호랑이 자수를 놓은 특별 주문 양복을 입고 다녔음. 6. 국민 엔카 가수 센 마사오도 신화를 믿었음. 가수로 쌓은 지명도를 담보로 은행 돈을 빌려 부동산에 뛰어들었고, 80년대 후반엔 수백억 대 사업가로 변신했음. 사람들은 그를 천(千)을 뜻하는 센 마사오가 아니라 억(億) 마사오라 부르며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풍자했음. 자가 헬기로 전국을 날며 노래가 아닌 부동산 물건을 찾아다녔음. 7. 미술감독 스즈키에게도 거품이 찾아왔음. 도쿄 미나토구 아카사카의 그의 집은 2억 엔에서 16억 엔으로 뛰었음. 집을 팔라는 유혹에 결국 대대로 운영하던 작은 양곡점까지 팔고, 은행에서 6억을 더 대출받아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자에 나섰음. 8. 거품의 근본 원인은 1985년 플라자 합의였음. 미국이 대일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엔화 절상을 요구하면서 엔화가 1년 새 두 배로 급등했음. 수출에 빨간불이 켜진 일본 정부는 금리를 5%에서 2.5%까지 내렸음. 9. 저금리 정책이 3년 넘게 이어지며 시중에 돈이 넘쳤음. 1985년 3.8%이던 통화 증가율이 1988년 13%까지 뛰었고, 풀린 돈은 고수익 투자처를 찾아 토지와 주식으로 몰려들었음. 배경엔 오르기는 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에도 시대부터 내려온 토지 불패 신화가 있었음. 10. 부동산 붐 뒤엔 은행들의 대출 경쟁이 있었음. 부동산을 담보로 평가액의 120%까지도 대출이 가능했고, 이런 과열 경쟁은 부동산 전업자뿐 아니라 일반 기업까지 파고들었음. 권리금 없이 짧게 입주하는 위클리맨션 같은 파격 아이디어로 대박을 낸 사업가도 등장했음. (이어서 계속 🔗)

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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